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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함께하는 하루

아이와 가볼만한 곳 - 남양주 다산 정약용 유적지

by 관절염은아 2024. 5. 18.

 아이랑 정약용 위인전을 읽어보다가 남양주에 정약용 유적지가 있다고 해서 다녀와봤습니다.

남양주로 한때 출퇴근도 했었는데 이런 곳이 있는지 몰랐으며, 위치는 팔당댐 근처로 안쪽으로 조금만 더 들어가면 있습니다.

저희는 토요일 12시 정도에 도착했으며 주차장(무료)은 넓게 되어 있으나, 자리가 바로 있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그래도 회전율이 빨라 출차하는 차들도 많이 보였습니다.

주말 주차장 모습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나오면 바로 맞은편에 유적지들을 관람하실수 있습니다.

거리는 깔끔하게 조성이 잘되어 있어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유적지는 크게 기념관 - 문도사(미개방) - 정약용 묘 - 여유당 순으로 볼 수 있으며 관람시간은 30분도 안 걸린 거 같습니다.

정약용 묘
여유당 - 다산 정약용이 고향으로 돌아와 살던 곳

 

▷정약용의 삶

1. 성장기 

 다산은 어릴때부터 영리하고 공부를 잘했다고 합니다. 7세에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리니 멀고 가까움이 달라서라네"라는 시를 써서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았고 10세에 부친에게서 경서와 역사서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15세에 풍산 홍 씨와 결혼하여 서울생활을 시작하였고 20세를 전후로 해서 과거공부에 본격적으로 힘을 기울였으며 급기야 22세에 과거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정조대왕을 만나게 되고 총애를 받게 되고 28세에 벼슬길로 나아갑니다.

 

2. 정약용의 벼슬시절

 다산은 규장각 초계문신으로 발탁되는 등 정조의 총애 속에서 재주와 능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배다리 설계에서 재주를 보인 다산은 31세에 부친상으로 여막살이를 하는 동안 정조로부터 수원화성 설계를 명령받았습니다. 33살에 암행어사로 나아가 백성들의 참혹상을 목격하고 관리들을 처벌받게 정조에게 보고했다고 합니다. 이후 동부승지로 임명되었고 천주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옹호하였으며, 여러 사건들에 휘말려 '여유당'이라는 당호를 짓고 세상과 거기를 두자고 마음먹었으나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한 '신유사옥'이 일어났습니다.

 

3. 다산의 유배지

 '신유사옥'으로 셋째 형 정약종은 순교하고, 둘째 형 정약전과 다산은 긴 유배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다산의 첫 유배지는 장기(현 포항) 이었으며, 다시 서울로 왔다가 정약전은 흑산도로 다산은 강진로 유배길에 올랐습니다. 형은 16년 후에 죽고, 다산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다가 18년 후에 귀향했습니다. 다산이 강진에 도착했을 때는 추운 겨울날  대역죄인이라 모두 접촉을 피했는데 이때 불쌍히 여긴 동문매문가의 주모가 있었습니다. 초기의 엄혹한 감시와 압박이 조금씩 풀리면서 1808년 다산초당으로 거처를 옮겼으며 제자들과 함께 학업에 정진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4. 정약용의 해배 이후

 18년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와 저술의 수정보완을 계속하였으며 1836년 회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인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습니다.

 

거중기

 

정약용 유적지를 보고 바로 맞은편에 실학박물관이 있습니다.

실학 박물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현재 1층은 특별전시회로 '자산어보' 관련된 내용이 있으며 2층이 실학에 대한 내용으로 전시가 되어 있습니다. 1층 한쪽에서 아이들 체험부스로 뱃지 만들기도 할 수 있고, 책갈피도 만들 수 있었습니다. 퀄리티가 괜찮아서 마음에 들었습니다.

실학박물관 -체험부스

 

올라가는 길에 무료 락커룸이 있으니 짐이 많다면 잠시 보관했다가 구경하셔도 좋을거 같습니다. (무료)

 

2층 전시관은 3개의 테마로 되어 있으며 실학에 대한 이야기 및 관련 학자들 및 물건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정약전의 자산어보

 실학자 정약전이 유배지 흑산도에서 쓴 바다생물 백과사전으로 이 책에는 흑산도 앞바다에서 사는 물고기, 벌레, 새, 식물 등 다양한 식물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자산'은 흑산도를 뜻하는 말이고, 흑산도는 '검을 흑, 뫼산, 섬도'로 쓰는데 섬의 산과 앞바다가 푸르다 못해 검게 보인다고 해서 흑산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정약전은 '흑산'이라는 말이 너무 멀고 어둡게 느껴져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집안사람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는 '검다'라는 의미가 있는 한자 '자'로 바꿔 '자산'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1층 자산어보 전시회

 

 

관람후기 및 TIP

  • 주차장 앞에 칼국수, 돈까스 집있으니 아이랑 가도 간단하게 드실수 있습니다.
  • 정약용 유적지 안에서 간단한 음식물은 드실수 있으니 도시락 준비하셔도 됩니다.
  • 유적지 및 박물관 동선이 짧아 구경하는데 2시간 내외로 걸립니다.
  • 가볍게 마실 나가는 느낌으로 가셔도 좋을거 같습니다.